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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선포하는 편입니다. 이 비상계엄을 거쳐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
-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전례없는 계엄 선포. 누군가는 명령에 복종했고, 누군가는 표결을 피해 숨었지만, 그 늦은 시간에도 국회로 나선 이들이 있는 편입니다.
국회 담장 밖 차디찬 길거리에서 "계엄 철폐"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들, 또한 국회 안에서 계엄 해제안 표결까지 본회의장을 지켰던 보좌진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을까요.
야마토플레이사례■국회 담장 밖 시민들: #택시운전사 #한강 #시민이_이긴다
#택시운전사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으로 향했던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택시운전사'. 그날 밤 서울 여의도에도 '택시운전사'가 있었습니다.
20대 대학생 노민영 씨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친구들과 관련 내용 골드몽플레이 함께 홍대에서 택시를 잡아 국회로 향했습니다.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에도 '계엄군이 국회로 향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민영 씨는 광주 역사 기행을 갔던 경험을 떠올렸고, 마음속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했습니다. 관련 내용
사아다쿨 관련 내용
[노민영 / 대학생]
"계엄군이 들어와서 국회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계엄 시기가 몇십 년 기약 없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더 희생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최악의 가정이었어요.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잔혹한 일들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국회로 향했습니다"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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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까지 온 시민도 있었는데, 택시기사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노민영 / 대학생]
"지방에서부터 택시 타고 오셨던 분들.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 주시면서 택시비 받지 않겠다고 하셨던 이야기라던가. 80년 관련 내용 바다이야기고래 관련 내용 광주를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었고요. 진짜 다양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두렵지 않다."
30대 직장인 백현영 씨는 망원동 카페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쉬려고 SNS에 연결한 그때,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포고령 내용을 점검하고 나서야 '아 진짜구나' 실감이 됐습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현영 씨는 이전까지 살면서 한 번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포고령의 내용 한줄 한줄이 현영 씨의 마음을 짓눌렀고, 국회로 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백현영 / 회사원]
"집회 시위의 자유,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야당이 싫어서' 제한하겠다는 것을 들으니까. '시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시위를 하러 나가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만약에 지금 내가 안 나가서 내일도 계엄이 이어지면 되게 후회되고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하철을 타면 혹시나 국회의사당역을 무정차 통과할까봐, 현영 씨도 택시를 불러 국회로 향했습니다.
20대 대학생 이성록 씨는 자취방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성록 씨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계엄이 무엇인지, 계엄군이 어떤 존재인지 역사를 거쳐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국회로 가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불을 켜지도 못한 채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록 씨에게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성록 / 대학생]
"'제가 국회에 있을까 봐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 위험하니까 절대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길래. 제가 선생님한테는 '안 갈 거다 걱정하지 마시라' 그러고 끊었는데, 끊고 나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가야 하는 걸 알고 있었고, 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무서워서 숨어만 있었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져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성록 씨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봤지만, "국회는 위험해서 못간다"며 대부분 탑승을 거부당했습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택시가 잡혔고, 성록 씨는 마포대교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 마포대교 너머 고요한 한강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한강민영 씨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쪽에서 내려 국회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민영 씨 주위로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함께 "계엄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순간, 헬기 소리가 들렸고 밤하늘 색의 군용 헬기 세 대가 민영 씨 머리 위를 지나 국회로 향했습니다.
[노민영 / 대학생]
"광주 기행에 다녀왔을 때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 증거를 전시하면서 검은색 헬기 모형을 봤었어요. 그거랑 너무 겹쳐 보여서 그때부터 좀 무서웠고. 제 가방에 노트북이 있는데 얘가 총알을 막을 수 있을까 없을까, 앞으로 매야 할까 뒤로 매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들고."
현영 씨도 "계엄 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때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시민을 상대로 행해진 고문, 자유를 억압하는 여러 상황들이 머리 속을 스쳤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을까. 현장에서 만난 한 장년 남성은 그 당시를 기억하며 현영 씨에게 "윤석열은 계엄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면서 어떻게 이걸 다시 할 수가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백현영 / 회사원]
"과거의 경험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비상계엄 선포 영상이나 포고령만 읽어도 사실 그게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 부분이 과거에 아픔이 있으신 분들한테는 더더욱 충격적인 상황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새벽 1시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현영 씨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계엄군은 아직 국회에서 나오지 않았고, 경찰들도 여전히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2차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민들은 계속 "계엄 철폐"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성록 씨도 이때쯤 국회에 도착했습니다. 2차 계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 시간에도 국회에 도착한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무서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며 성록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성록 / 대학생]
"지난 1년 동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한강 작가님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80년 5월이 지난해 12월의 우리를 구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2024년의 12월의 우리가 또 미래의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민이_이긴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0 만장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차디찬 겨울,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불법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고, 민영 씨와 현영 씨, 성록 씨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현영 씨는 계엄의 밤을 겪어낸 뒤, 주말부터 여러 차례 집회에 나갔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며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던 지난해 12월 7일에도 현영 씨는 국회 앞에 있었습니다. 현영 씨는 그 날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진 날로 기억했습니다. 지난 1년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됐다고 현영 씨는 말하는 편입니다.
[백현영 / 회사원]
"저부터도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거든요. 친구들과도 그 전에는 정치 얘기를 하는게 좀 터부시 됐었는데, 정치 얘기를 하는 게 좀더 편해지는 변화가 있었어요. 비상계엄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사태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앞으로는 딛고 극복을 할 수 있지않을까…"
성록 씨도 '시민 한 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꾸준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한 차례 부결되고, 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잇따라 실패하자, 성록 씨의 마음 속엔 무력감과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또한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성록 씨는 무력감을 느꼈던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민영 씨는 지난 1년을 회상하며 "결국에는 옳은 것이 승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편입니다.
[노민영 / 대학생]
'결국에는 옳은 것이 승리한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탄핵 국면에서는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승리를 만들어 냈고.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은 광장을 함께 지켰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엄의 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시민들. 추운 겨울, 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키세스' 은박 담요를 덮은채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던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일상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민영 씨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다양한 요구를 정치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민영 / 대학생]
"사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무사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 자신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 이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들을 바라는 건데. 광장에서 나왔던 수많은 요구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 결국 그런 권리를 되찾는 날들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 안 보좌진들: #내직장_절대지켜 #바리케이트 #협치_동상이몽
# 내직장_절대지켜
시민들이 국회 밖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각. 국회 안에서는 보좌진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은건 아니었지만 같은생각으로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김석태 비서관도 TV로 계엄 소식을 점검한 뒤 바로 택시에 올랐습니다. 열흘 뒤면 결혼식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생각할 새도 없이 국회로 향했습니다. 같은당 보좌진으로 함께 1년 365일 국회를 오가던 예비신부와 함께였습니다.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처음에는 안 믿겼죠. 의례적으로 집에와서 TV를 켜다가 방송이 바뀌면서 계엄이라는게. 사명감보다는 '그냥 내 직장 지키러간다'라는 생각으로 왔었어요. 일반 시민분들도 엄청 많이 오셨거든요. 의원회관이든 어디든 있었던 분들이 다 이제 본청으로 모이는 시기였고"
11시 무렵쯤 같은당 김양진 비서관도 국회에 도착했습니다. 막내 비서관으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보좌진 단체채팅방에는 '계엄해제 요건은 국회 표결'이라는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왔고, '국회부터 지켜야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갑자기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처음에는 기관총 소린가 보다. 큰일났다. 그래서 엄청 두려움이 있었는데 헬기소리더라고요. 몇 분 뒤에 본청 앞에 계엄군들이 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점점 머리 위로 가까워지는 헬기소리를 뒤로하고 본청으로 향했습니다. 무장한 계엄군이 정문쪽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다만 발길은 본청 안이 아닌 본청 밖으로 향했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은 달라도 국회로 향하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을 배출한 당시 여당, 국민의힘 보좌진 A 씨는 본회의장 문이 채 열리지 않은 밤 10시 50분 국회 본청에 도달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11시 8분, 국회 본회의장 앞
15분쯤 지난 뒤에야 굳게 닫혔던 본회의장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로텐더홀을 채웠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여야를 떠나서 무조건 막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
"누구도 오라고 안 하죠. 그냥 '저는 국회로 가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보좌진들도 다 '국회로 오겠습니다.' 또 근처에 있었던 분들이 꽤 있었고. 의원님께서 좀 의결을 하셔야 된다, 이렇게 이걸 해제 의결을 참여하셔야 된다."
"아무리 여당이어도 대통령이 잘못 판단한 거다. 이 순간을 머뭇거리면 안 된다. 이거는 이 부분은 빨리 계엄 해제가 될 수 있도록 막아야한다."
#바리케이트
'직장'으로 들어선 보좌진들은 헬기에서 내린 계엄군들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순간마다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 인간 바리케이트'가 된 겁니다.
계엄군 사이에 끼어있는 김양진 비서관 (검정 뿔테를 쓴 남성)
김양진 비서관은 본청 밖에서 직접 계엄군과 몸싸움에 나섰습니다. 본청 코앞까지 들이닥친 이상, 안에서 막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 시간을 벌어야겠단 판단에서였습니다. 쌍안경에 군장까지 찬 정예 병력들 사이에 끼어 압도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누가 구호를 주시더라고요 '밀어!' 이런 식으로 구호를 주시면 저희가 또 밀리고 엉키고 몸싸움을 했어요. 계엄군들도 사람인지라 좀 흥분을 한 걸 느꼈어요. 제가 한 두세 번 정도 이렇게 던져지기도 했거든요. 다시 이제 전열로 들어가서 몸싸움을 하고 유리창을 깨고 진입할 때까지 같은 대치가 반복되고 있었어요."
보좌진들은 계엄군 진입을 막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든 집기류를 쌓아올렸습니다. 계엄군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본청 내부로 진입을 시작할때, 바리케이트는 점점 더 견고해졌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는 본청 내부는 일종의 '작전상황실' 처럼 돌아갔다고 설명했습니다. 누군가는 '어느 출구로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다. 몇 층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상황을 중계해주고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작전을 짜서 대응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계엄군이 국회로 들이닥치자 고참 보좌진들과 보좌진 출신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에 스크럼 한줄 더 짜라' '본관 식당에 식탁 옮겨서 후문에서 올라오는길 막아둬라' '본청 2층 소화기 싹 걷어와라'며 체계적으로 지시를 이어갔습니다. KBS가 만난 한 보좌진도 "조직된 모습에 어린 보좌진들이 안도했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계엄군이 국회로 들이닥친 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에서 본회의장으로 가는 통로를 막았습니다. 유리문 앞에 의자를 쌓고, 소방호스로 둘둘 말아 통로를 차단했습니다.
소방호스로 출입문을 막는 보좌진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
"군인들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면 그거는 대개 물리적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국회를 군인들이 완력으로 막게 되면 무력으로 회의를 저지하게 되는 거니까 그거를 막아야 되겠다라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
그는 87년 민주항쟁과 90년대 학생운동 시절을 보냈던 그때와 이번 계엄이 겹쳐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총 다 들고 중무장했지만 결국은 옛날 데모할 때 스크럼 짜고 서로 밀고 이렇게 하듯이 그렇게 뚫고 들어와야 되는 상황인 거잖아요. 일단은 막아야 되겠다는 거죠. 막는 게 결국은 이 상황을 안전하게 지키는 거고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거고 그런 거죠. "
모두의 힘을 쌓아올린 '바리케이트'를 피해 계엄군이 본회의장 코앞까지 진입하려하자, 민주당 김양진 비서관과 함께 있던 보좌진들은 본청으로 들어온 계엄군을 향해 소화기를 뿌렸습니다.
같은시각, 민주당 김석태 비서관은 달려가 계엄군을 끌어안았습니다. 계엄군의 총에 얼굴을 맞아 결혼식을 열흘 앞둔 예비신랑 얼굴에 상처가 났지만 그래도 '꼭 저지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본청으로 진입한 계엄군을 막아내고 있는 김석태 선임비서관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사실 '아 잡혀가나'라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총 같은 데 부딪혀서 얼굴이 찢어졌었고. 가방도 날아가고 안경도 날아가고….
계엄이 12월 3일이었고 제 결혼식이 12월 15일이었거든요. '결혼 10일 남겨놓고 뭐 하는 짓이냐', '몸을 사렸어야지' 주변에서도 많이 그랬었거든요. 많이 혼났죠. 만약에 누가 있었어도 저처럼 했을 것 같아요. 이제 그때 그 상황들이 당연히 막았어야 됐을 거고 그게 그냥 운이 좋게도 저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계엄군들은 대부분 소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작전에 대한 이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되겠다라는 투철함이나 저희를 적대시하는 눈빛은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이제 그분들이 엄청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일 텐데 뭐 이렇게 진짜 뭐 군대 예비군보다 더 못한 움직임으로 설렁설렁..."
[국민의힘 보좌진 A씨]
"우리나라 대한민국 군이 아무리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해도 거기 포고령에 나와 있는 그대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거다라는 그런 믿음? 이런 부분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계엄 해제를 선포합니다"
계엄 해제 표결이 이뤄지는 순간, 표현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내 직장'을 함께 지켜준 시민들에게 고마웠고, 계엄 해제 표결을 성사시켰다는 '안도감'과 계엄군을 막아냈다는 '환희', 또한 뒤늦게 '분노'도 찾아왔습니다.
#협치_동상이몽
12·3 불법계엄 이후 여야는 탄핵 심판을 거쳐 조기 대선을 치렀습니다. 함께 계엄 사태를 겪었지만, 국회에서 '협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막말과 욕설, 수차례 파행이 이어져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025년 12월 3일,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계엄. 그날만큼은 다를 줄 알았지만, '정쟁'은 계속됐습니다.
김석태 선임비서관은 달라지지 않는 국회가, 정치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소중한 직장이지만, 그 안에서 김 선임비서관은 '부모를 죽인 원수한테도 이렇게까지 할까', '원색적인 비난만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그래도 1년이면 뭐가 많이 바뀔 줄 알았는데 중간에 대선도 있었지만, 뭐 이렇게 바뀐 건 없구나. 이렇게까지 우리 진영을 옹호해야 되고 상대 진영을 비난해야 될까.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또한 서로 공통점을 찾는 대화를 먼저 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대화 타협은 실종된 지 오래인 것 같고요. 지금은 대화 타협보다는 일단 서로 사람으로서 존중을 좀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협치'가 되지 않는 이유로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논쟁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김양진 민주당 비서관은 말했습니다. 극우지지층과 국민의힘 일각에서 계속되는 '윤석열 옹호론'에서 야당이 벗어날 때, 비로소 협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겁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계엄의 정당성 혹은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서 일부 정당과 일부 시민들 간에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 논쟁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먼저 좀 분별을 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게 응당 맞지 않나. 계엄을 일으킨 측근들의 위법성을 철저히 단죄…."
계엄 1년 여야의 '동상이몽'은 계속되고 있는 편입니다.
국민의힘 수장인 장동혁 대표는 당내에서 비상계엄,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가 잇따르는데도 '지선 전략'을 이유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편입니다.
위헌·위법적인 비상 계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책임있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2025년 12월 3일,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 절연' 입장문을 냈습니다. 이외 '찐윤'으로 의원들도 잇따라 같은 입장을 냈습니다. 원조 '찐윤' 윤한홍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판하는 꼴이니 우리가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들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는 편입니다. 백약이 무효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국민의힘 소속 보좌진 A 씨는 '보수 진영의 제대로 된 사과'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야 협치를 거쳐 민생도 더 잘 챙길 수 있고, 새로운 보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잘못'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씨]
"다른 이유 달지 말고 정식으로 국민들께 잘못된 행동이었다. 어떤 이유나 배경이나 뭐 이런 걸 떠나서 그 계엄을 선포한 행위 자체가 매우 잘못된 행동이었고, 윤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도 크겠지만 그것만으로 돌릴 게 아니다."
"(탄핵 국면 당시엔 의원들이) 머뭇거렸던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전체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속이 좁은 생각 아니었나.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국민의 편에 서 가지고 민주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맞는 거지. 그런 결과를 생각해 가지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건 부질없다는거죠."
계엄과 탄핵은 끝났지만, 사과와 반성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광장에서 함께한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국회는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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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이유민 기자 ([email protected])
-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전례없는 계엄 선포. 누군가는 명령에 복종했고, 누군가는 표결을 피해 숨었지만, 그 늦은 시간에도 국회로 나선 이들이 있는 편입니다.
국회 담장 밖 차디찬 길거리에서 "계엄 철폐"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들, 또한 국회 안에서 계엄 해제안 표결까지 본회의장을 지켰던 보좌진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을까요.
야마토플레이사례■국회 담장 밖 시민들: #택시운전사 #한강 #시민이_이긴다
#택시운전사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으로 향했던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택시운전사'. 그날 밤 서울 여의도에도 '택시운전사'가 있었습니다.
20대 대학생 노민영 씨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친구들과 관련 내용 골드몽플레이 함께 홍대에서 택시를 잡아 국회로 향했습니다.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에도 '계엄군이 국회로 향하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민영 씨는 광주 역사 기행을 갔던 경험을 떠올렸고, 마음속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했습니다. 관련 내용
사아다쿨 관련 내용
[노민영 / 대학생]
"계엄군이 들어와서 국회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계엄 시기가 몇십 년 기약 없이 지속되면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더 희생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최악의 가정이었어요.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잔혹한 일들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 국회로 향했습니다" 관련 내용
릴플레이손오공
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까지 온 시민도 있었는데, 택시기사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노민영 / 대학생]
"지방에서부터 택시 타고 오셨던 분들.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 주시면서 택시비 받지 않겠다고 하셨던 이야기라던가. 80년 관련 내용 바다이야기고래 관련 내용 광주를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었고요. 진짜 다양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두렵지 않다."
30대 직장인 백현영 씨는 망원동 카페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쉬려고 SNS에 연결한 그때,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포고령 내용을 점검하고 나서야 '아 진짜구나' 실감이 됐습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현영 씨는 이전까지 살면서 한 번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포고령의 내용 한줄 한줄이 현영 씨의 마음을 짓눌렀고, 국회로 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백현영 / 회사원]
"집회 시위의 자유,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야당이 싫어서' 제한하겠다는 것을 들으니까. '시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시위를 하러 나가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만약에 지금 내가 안 나가서 내일도 계엄이 이어지면 되게 후회되고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하철을 타면 혹시나 국회의사당역을 무정차 통과할까봐, 현영 씨도 택시를 불러 국회로 향했습니다.
20대 대학생 이성록 씨는 자취방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안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성록 씨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계엄이 무엇인지, 계엄군이 어떤 존재인지 역사를 거쳐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국회로 가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불을 켜지도 못한 채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록 씨에게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성록 / 대학생]
"'제가 국회에 있을까 봐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 위험하니까 절대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길래. 제가 선생님한테는 '안 갈 거다 걱정하지 마시라' 그러고 끊었는데, 끊고 나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가야 하는 걸 알고 있었고, 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무서워서 숨어만 있었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져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성록 씨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봤지만, "국회는 위험해서 못간다"며 대부분 탑승을 거부당했습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택시가 잡혔고, 성록 씨는 마포대교를 지나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 마포대교 너머 고요한 한강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한강민영 씨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쪽에서 내려 국회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민영 씨 주위로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함께 "계엄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순간, 헬기 소리가 들렸고 밤하늘 색의 군용 헬기 세 대가 민영 씨 머리 위를 지나 국회로 향했습니다.
[노민영 / 대학생]
"광주 기행에 다녀왔을 때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 증거를 전시하면서 검은색 헬기 모형을 봤었어요. 그거랑 너무 겹쳐 보여서 그때부터 좀 무서웠고. 제 가방에 노트북이 있는데 얘가 총알을 막을 수 있을까 없을까, 앞으로 매야 할까 뒤로 매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들고."
현영 씨도 "계엄 철폐, 독재 타도"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때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시민을 상대로 행해진 고문, 자유를 억압하는 여러 상황들이 머리 속을 스쳤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을까. 현장에서 만난 한 장년 남성은 그 당시를 기억하며 현영 씨에게 "윤석열은 계엄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면서 어떻게 이걸 다시 할 수가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백현영 / 회사원]
"과거의 경험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비상계엄 선포 영상이나 포고령만 읽어도 사실 그게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런 부분이 과거에 아픔이 있으신 분들한테는 더더욱 충격적인 상황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새벽 1시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현영 씨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계엄군은 아직 국회에서 나오지 않았고, 경찰들도 여전히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2차 계엄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민들은 계속 "계엄 철폐"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성록 씨도 이때쯤 국회에 도착했습니다. 2차 계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 시간에도 국회에 도착한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무서웠던 마음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며 성록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성록 / 대학생]
"지난 1년 동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한강 작가님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80년 5월이 지난해 12월의 우리를 구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2024년의 12월의 우리가 또 미래의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민이_이긴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지난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0 만장일치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차디찬 겨울,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불법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고, 민영 씨와 현영 씨, 성록 씨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현영 씨는 계엄의 밤을 겪어낸 뒤, 주말부터 여러 차례 집회에 나갔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며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던 지난해 12월 7일에도 현영 씨는 국회 앞에 있었습니다. 현영 씨는 그 날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진 날로 기억했습니다. 지난 1년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지게 됐다고 현영 씨는 말하는 편입니다.
[백현영 / 회사원]
"저부터도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거든요. 친구들과도 그 전에는 정치 얘기를 하는게 좀 터부시 됐었는데, 정치 얘기를 하는 게 좀더 편해지는 변화가 있었어요. 비상계엄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사태를) 재발견하는 과정에서 앞으로는 딛고 극복을 할 수 있지않을까…"
성록 씨도 '시민 한 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꾸준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한 차례 부결되고, 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잇따라 실패하자, 성록 씨의 마음 속엔 무력감과 분노가 쌓여갔습니다. 또한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 성록 씨는 무력감을 느꼈던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민영 씨는 지난 1년을 회상하며 "결국에는 옳은 것이 승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편입니다.
[노민영 / 대학생]
'결국에는 옳은 것이 승리한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탄핵 국면에서는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승리를 만들어 냈고.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은 광장을 함께 지켰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엄의 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시민들. 추운 겨울, 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키세스' 은박 담요를 덮은채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던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일상이 지켜질 수 있었다고 민영 씨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다양한 요구를 정치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민영 / 대학생]
"사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무사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 자신이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 이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들을 바라는 건데. 광장에서 나왔던 수많은 요구들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 결국 그런 권리를 되찾는 날들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 안 보좌진들: #내직장_절대지켜 #바리케이트 #협치_동상이몽
# 내직장_절대지켜
시민들이 국회 밖에서 고군분투하던 시각. 국회 안에서는 보좌진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은건 아니었지만 같은생각으로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김석태 비서관도 TV로 계엄 소식을 점검한 뒤 바로 택시에 올랐습니다. 열흘 뒤면 결혼식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생각할 새도 없이 국회로 향했습니다. 같은당 보좌진으로 함께 1년 365일 국회를 오가던 예비신부와 함께였습니다.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처음에는 안 믿겼죠. 의례적으로 집에와서 TV를 켜다가 방송이 바뀌면서 계엄이라는게. 사명감보다는 '그냥 내 직장 지키러간다'라는 생각으로 왔었어요. 일반 시민분들도 엄청 많이 오셨거든요. 의원회관이든 어디든 있었던 분들이 다 이제 본청으로 모이는 시기였고"
11시 무렵쯤 같은당 김양진 비서관도 국회에 도착했습니다. 막내 비서관으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보좌진 단체채팅방에는 '계엄해제 요건은 국회 표결'이라는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왔고, '국회부터 지켜야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갑자기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처음에는 기관총 소린가 보다. 큰일났다. 그래서 엄청 두려움이 있었는데 헬기소리더라고요. 몇 분 뒤에 본청 앞에 계엄군들이 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점점 머리 위로 가까워지는 헬기소리를 뒤로하고 본청으로 향했습니다. 무장한 계엄군이 정문쪽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다만 발길은 본청 안이 아닌 본청 밖으로 향했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막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은 달라도 국회로 향하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을 배출한 당시 여당, 국민의힘 보좌진 A 씨는 본회의장 문이 채 열리지 않은 밤 10시 50분 국회 본청에 도달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11시 8분, 국회 본회의장 앞
15분쯤 지난 뒤에야 굳게 닫혔던 본회의장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로텐더홀을 채웠습니다. 어떤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여야를 떠나서 무조건 막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
"누구도 오라고 안 하죠. 그냥 '저는 국회로 가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보좌진들도 다 '국회로 오겠습니다.' 또 근처에 있었던 분들이 꽤 있었고. 의원님께서 좀 의결을 하셔야 된다, 이렇게 이걸 해제 의결을 참여하셔야 된다."
"아무리 여당이어도 대통령이 잘못 판단한 거다. 이 순간을 머뭇거리면 안 된다. 이거는 이 부분은 빨리 계엄 해제가 될 수 있도록 막아야한다."
#바리케이트
'직장'으로 들어선 보좌진들은 헬기에서 내린 계엄군들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순간마다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 인간 바리케이트'가 된 겁니다.
계엄군 사이에 끼어있는 김양진 비서관 (검정 뿔테를 쓴 남성)
김양진 비서관은 본청 밖에서 직접 계엄군과 몸싸움에 나섰습니다. 본청 코앞까지 들이닥친 이상, 안에서 막는 것보단 밖으로 나가 시간을 벌어야겠단 판단에서였습니다. 쌍안경에 군장까지 찬 정예 병력들 사이에 끼어 압도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누가 구호를 주시더라고요 '밀어!' 이런 식으로 구호를 주시면 저희가 또 밀리고 엉키고 몸싸움을 했어요. 계엄군들도 사람인지라 좀 흥분을 한 걸 느꼈어요. 제가 한 두세 번 정도 이렇게 던져지기도 했거든요. 다시 이제 전열로 들어가서 몸싸움을 하고 유리창을 깨고 진입할 때까지 같은 대치가 반복되고 있었어요."
보좌진들은 계엄군 진입을 막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든 집기류를 쌓아올렸습니다. 계엄군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본청 내부로 진입을 시작할때, 바리케이트는 점점 더 견고해졌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는 본청 내부는 일종의 '작전상황실' 처럼 돌아갔다고 설명했습니다. 누군가는 '어느 출구로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다. 몇 층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상황을 중계해주고 누군가는 체계적으로 작전을 짜서 대응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계엄군이 국회로 들이닥치자 고참 보좌진들과 보좌진 출신 의원들이 '본회의장 앞에 스크럼 한줄 더 짜라' '본관 식당에 식탁 옮겨서 후문에서 올라오는길 막아둬라' '본청 2층 소화기 싹 걷어와라'며 체계적으로 지시를 이어갔습니다. KBS가 만난 한 보좌진도 "조직된 모습에 어린 보좌진들이 안도했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계엄군이 국회로 들이닥친 후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에서 본회의장으로 가는 통로를 막았습니다. 유리문 앞에 의자를 쌓고, 소방호스로 둘둘 말아 통로를 차단했습니다.
소방호스로 출입문을 막는 보좌진들
[국민의힘 보좌진 A 씨]
"군인들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면 그거는 대개 물리적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또한 국회를 군인들이 완력으로 막게 되면 무력으로 회의를 저지하게 되는 거니까 그거를 막아야 되겠다라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
그는 87년 민주항쟁과 90년대 학생운동 시절을 보냈던 그때와 이번 계엄이 겹쳐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총 다 들고 중무장했지만 결국은 옛날 데모할 때 스크럼 짜고 서로 밀고 이렇게 하듯이 그렇게 뚫고 들어와야 되는 상황인 거잖아요. 일단은 막아야 되겠다는 거죠. 막는 게 결국은 이 상황을 안전하게 지키는 거고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거고 그런 거죠. "
모두의 힘을 쌓아올린 '바리케이트'를 피해 계엄군이 본회의장 코앞까지 진입하려하자, 민주당 김양진 비서관과 함께 있던 보좌진들은 본청으로 들어온 계엄군을 향해 소화기를 뿌렸습니다.
같은시각, 민주당 김석태 비서관은 달려가 계엄군을 끌어안았습니다. 계엄군의 총에 얼굴을 맞아 결혼식을 열흘 앞둔 예비신랑 얼굴에 상처가 났지만 그래도 '꼭 저지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본청으로 진입한 계엄군을 막아내고 있는 김석태 선임비서관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사실 '아 잡혀가나'라는 생각도 들었었어요. 총 같은 데 부딪혀서 얼굴이 찢어졌었고. 가방도 날아가고 안경도 날아가고….
계엄이 12월 3일이었고 제 결혼식이 12월 15일이었거든요. '결혼 10일 남겨놓고 뭐 하는 짓이냐', '몸을 사렸어야지' 주변에서도 많이 그랬었거든요. 많이 혼났죠. 만약에 누가 있었어도 저처럼 했을 것 같아요. 이제 그때 그 상황들이 당연히 막았어야 됐을 거고 그게 그냥 운이 좋게도 저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계엄군들은 대부분 소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작전에 대한 이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되겠다라는 투철함이나 저희를 적대시하는 눈빛은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이제 그분들이 엄청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일 텐데 뭐 이렇게 진짜 뭐 군대 예비군보다 더 못한 움직임으로 설렁설렁..."
[국민의힘 보좌진 A씨]
"우리나라 대한민국 군이 아무리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해도 거기 포고령에 나와 있는 그대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거다라는 그런 믿음? 이런 부분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계엄 해제를 선포합니다"
계엄 해제 표결이 이뤄지는 순간, 표현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내 직장'을 함께 지켜준 시민들에게 고마웠고, 계엄 해제 표결을 성사시켰다는 '안도감'과 계엄군을 막아냈다는 '환희', 또한 뒤늦게 '분노'도 찾아왔습니다.
#협치_동상이몽
12·3 불법계엄 이후 여야는 탄핵 심판을 거쳐 조기 대선을 치렀습니다. 함께 계엄 사태를 겪었지만, 국회에서 '협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막말과 욕설, 수차례 파행이 이어져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025년 12월 3일,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계엄. 그날만큼은 다를 줄 알았지만, '정쟁'은 계속됐습니다.
김석태 선임비서관은 달라지지 않는 국회가, 정치가 실망스러웠습니다. 소중한 직장이지만, 그 안에서 김 선임비서관은 '부모를 죽인 원수한테도 이렇게까지 할까', '원색적인 비난만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석태 더불어민주당 선임비서관]
"그래도 1년이면 뭐가 많이 바뀔 줄 알았는데 중간에 대선도 있었지만, 뭐 이렇게 바뀐 건 없구나. 이렇게까지 우리 진영을 옹호해야 되고 상대 진영을 비난해야 될까.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또한 서로 공통점을 찾는 대화를 먼저 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대화 타협은 실종된 지 오래인 것 같고요. 지금은 대화 타협보다는 일단 서로 사람으로서 존중을 좀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협치'가 되지 않는 이유로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논쟁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김양진 민주당 비서관은 말했습니다. 극우지지층과 국민의힘 일각에서 계속되는 '윤석열 옹호론'에서 야당이 벗어날 때, 비로소 협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겁니다.
[김양진 더불어민주당 비서관]
"계엄의 정당성 혹은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서 일부 정당과 일부 시민들 간에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 논쟁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먼저 좀 분별을 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게 응당 맞지 않나. 계엄을 일으킨 측근들의 위법성을 철저히 단죄…."
계엄 1년 여야의 '동상이몽'은 계속되고 있는 편입니다.
국민의힘 수장인 장동혁 대표는 당내에서 비상계엄,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요구가 잇따르는데도 '지선 전략'을 이유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편입니다.
위헌·위법적인 비상 계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책임있는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2025년 12월 3일,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계엄 사과와 윤 전 대통령 절연' 입장문을 냈습니다. 이외 '찐윤'으로 의원들도 잇따라 같은 입장을 냈습니다. 원조 '찐윤' 윤한홍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판하는 꼴이니 우리가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들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는 편입니다. 백약이 무효라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국민의힘 소속 보좌진 A 씨는 '보수 진영의 제대로 된 사과'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야 협치를 거쳐 민생도 더 잘 챙길 수 있고, 새로운 보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잘못'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 A씨]
"다른 이유 달지 말고 정식으로 국민들께 잘못된 행동이었다. 어떤 이유나 배경이나 뭐 이런 걸 떠나서 그 계엄을 선포한 행위 자체가 매우 잘못된 행동이었고, 윤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문제도 크겠지만 그것만으로 돌릴 게 아니다."
"(탄핵 국면 당시엔 의원들이) 머뭇거렸던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전체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속이 좁은 생각 아니었나.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국민의 편에 서 가지고 민주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맞는 거지. 그런 결과를 생각해 가지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건 부질없다는거죠."
계엄과 탄핵은 끝났지만, 사과와 반성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광장에서 함께한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국회는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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